(출처 : 네이버 영화)
사실 <돼지의 왕>은 만들어진지 굉장히 오래된 애니메이션이다. 개봉은 2011년에 했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15년 동안 기다려야 했던 애니메이션이다. <돼지의 왕>은 <부산행>과 <서울역>을 찍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으로 그는 노숙자가 될 각오를 하고 버텼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국내에 개봉하는 영화들은 애니메이션이던 영화던 포스터가 별로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온 캐롤같은 몇몇 포스터들을 제외하면 영화자체의 본질을 담아내는 포스터는 없고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의 얼굴이나 영화의 수상 경력만 나열하고 관련없는 문구를 집어넣어놔서 좋은 영화를 삼류영화로 만들기 부지기수다. 개인적으로 <돼지의 왕>도 영화를 삼류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최초 잔혹 스릴러'라고 붙여야 했나 싶다. 이것은 스릴러가 아니라 다큐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주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를 따라가면 왜 그 장면으로 시작했는지, 왜 그 여성은 죽은 채 식탁 위에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영화 포스터는 마치 순수하게 15년 전 벌어진 범죄에 대한 얘기 인 것같이 되어있지만 이것은 범죄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세상이 약자에게 저지르는 '범죄'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경민이와 종석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였던 사이로 중학교에 같이 올라간다. 경민이와 종석이는 반에서 소위 '일진'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존재다. 마냥 당하고만 있던 경민이와 종석이에게 첫 번째 변화가 찾아오는데 그게 바로 철이이다. 철이는 그동안 괴롭힘을 당하면 울기만 하던 경민이나 그걸 방관하고만 있던 교실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최초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아이이다. 그리고 경민이와 종석이에게 '악'에 대해 종용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그리고 찾아온 두번째 변화는 새로 전학온 찬형이다. 공부도 잘하고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한 찬형이를 보면서 경민이는 잠깐 찬형이가 교실 안의 상황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찬형이도 3일을 버티지 못하고 그 세력에 굴복한다. 철이는 계속 반항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효과적인 목소리를 위해 '공개 자살'을 하겠다고 하지만 막판에 계획을 수정하게 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종석이가 뱉는 독백과 종석이가 보는 환상, 철이가 보는 환상에 아주 큰 의미가 담겨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섬뜩함을 느꼈는데 단순히 여자 시체의 부릅 뜬 눈이라던가, 종석이와 철이가 찔러 죽인 고양이의 환상이라던가, 자살한 철이 아버지의 목이 돌아가는 환상이라던가 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이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이 섬뜩했기 때문이다. 종석이는 교실 내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을 '개'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애완견 같은 존재이다. 한마디로 개라는 것이다...그들은 무섭게 굴어도 되고, 위협을 가해도 되는 존재이다.
실제로 학교 가는 길에 셰퍼드 같은 개의 습격을 당했던 종석이는 자신을 습격해도 그저 '하지마' 정도의 말로 끝나는 개를 보면서 개가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환상을 본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면서 교실 내 권력을 잡고 있는, 그리고 폭력을 행사해도 용납이 되는 그런 존재들을 보고 똑같다고 느낀다. 분명히 부당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잡고 있고 교실 내 서열이 높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용납되는 '중간관리책임자들' 이다.
그리고 철이는 '개'가 아닌 존재들은 전부 '돼지'라고 한다.
돼지들은 말이야, 자신들의 살을 찌우는 게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착각해, 누가 더 그 먹이들을 빨리 먹냐 경쟁하면서 다른 돼지들에 비해서 더 빨리 살을 찌우려고 하지. 그렇지만 돼지들은 그 살조차 자신들의 것이 아니야.
영화 초반에 돼지의 얼굴을 한 철이가 내뱉는 대사는 더 섬뜩하다.
돼지들은 팔다리지 찢겨져야 가치가 생기는 거야.
철이의 대사가 섬뜩한 이유는 냉혹한 현실을 담고 있고 실제로 그들의 위치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반 아이들은 마치 '내가 그래도 쟤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경민이나 종석이와 똑같이 돼지라는 존재이다. 그저 경민이나 종석이보다 먹이를 빨리 먹을 뿐. 그리고 종석이는 이러한 현실을 아주 혐오하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지금과 같은 처지를 혐오하는 종석이에게 '그들보다 더 악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철이의 말은 마치 마약과도 같았다. 그래서 칼을 내밀며 고양이를 찌르라고 하는 철이의 말에 그동안 당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바로 고양이를 수차례찌른다. 그러나 우습게도 정작 종석이는 교실 내에서 행동하지는 않는다. 맞서 싸우는 것은 철이이다. 철이에 대해 종석이는 '돼지들의 왕'이라고 명명한다. 아니, 어쩌면 종석이에게만 철이는 왕이었을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결과적으로 종석이가 철이를 옥상에게 민 이유는 '돼지의 왕'인 철이가 죽지 않으면 더이상 철이는 '돼지의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맞으면서 버텼던 것은 자신에게 왕이었던 철이가 있어서였고, 마치 철이는 그 상황을 다 해결해줄 것 같았던 '돼지의 왕'이었는데 철이가 스스로 내뱉은 공개자살을 하지않으면 더이상 철이는 '돼지의 왕'이 아니게 된다. 차마 괴물이 될 수 없었던 자신 대신에 괴물이 될거라고 했던 철이는 종석이가 되고 싶은 또다른 자아였을 것이다. 철이가 무너지면 종석이의 세상도 무너진다. 영원히 굴복하지 않을 것 같던 철이조차 '깝죽대봤자 나만 힘들다'라고 말하는 순간 종석이의 세상에서 철이는 더이상 왕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종석이는 반드시 철이를 '돼지의 왕'으로 만들어야 했고 철이는 '돼지의 왕'이어야 했기 때문에, 그래야 종석이 자신이 가졌던 마음, 자신이 고양이를 죽인 행위가 정당화되기 때문에 그는 옥상에서 철이를 밀었다
종석이와 철이가 했던 말들은 섬뜩한 현실을 보여준다.
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는 것에 대해 '악'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악'에 해당한다. <돼지의 왕>에서 악은 인간이 칼을 만들고 손에 쥔 칼을 뺏기지 않기 위해 생겨난 마음이라고 말한다. '악'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는 다 자기가 가진 것을 뺏기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있다. 그래서 철이는 악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실 내 '개'의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 행하는 부당한 행동과 폭력들은 실제로 사회에서 일종의 '중간관리직'들이 약자들에게 행하는 행동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 부당한 행동이 유지되고 정당화되면서 용인되는 과정도 사회에서 그런 행동들이 묵인되고 받아들여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찬형이는 3일만에 굴복하면서 '무슨 수로 걔네를 이기겠냐'고 하며 '안보면 그만이다.'라고 한다. 수많은 방관자들은 아마도 이런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철이가 결과적으로 굴복하게 되는 과정도 이 같은 사회에서 목소리를 냈다가 고꾸라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철이는 자살 시늉을 하기 직전 종석이에게 '괜히 깝죽대봤자 나만 힘들다'라고 한다. 이 대사는 '돼지'들을 괴롭히는 '개'들이 돼지들에게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아직까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처벌이 지지부진하다. 처음 촛불이 붙었을 때 그들은 우리가 '깝죽대봤자 나만 힘들다'라고 생각했으면 했을 것이다. 문화계블랙리스트들을 작성하면서 그들이 '깝죽대봤자 나만 힘들다'라고 생각했으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은 횃불이 되어 타고 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이는 사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돼지의 왕'을 세워서 누군가 우리를 대행하게 만들고 그를 총알받이로 내세워선 안된다. 혼자싸우는 '돼지의 왕'은 철이처럼 '깝죽대봤자 나만 힘들다' 하게 된다.우리는 다같이 맞설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개'나 '돼지'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가끔 우리는 개위에 있는 것들이 바라는 대로 우리끼리 싸운다. 그러나 그것은 개 위에 있는 기득권과 권력자들이 바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돼지의 왕'이 필요한게 아니라 지금처럼 다같이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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