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도리를 찾아서>를 보고 왔다. <니모를 찾아서>에 대한 옅은 향수와 귀여운 아기 때의 도리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갔다.
사실 영화적으로 보면 딱히 흠잡을 만한 것도, 딱히 칭찬할 만한 점도 없다. 뭐랄까, 딱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이 영화의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를 붙이자면 정말 '가족적인' 영화이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니까 당연히 그런 게 아니겠냐만은 유독 <도리를 찾아서>는 새삼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가족적인'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첫 번째 이유는 너무 명백하다. 영화의 전체가 가족을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니모를 찾아서>는 부모가 자식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도리를 찾아서>는 자식이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마치 연어가 고향으로 회귀하듯, 장성한 자식이 부모를 찾아뵙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니모를 찾아서>는 좀 더 애틋한 느낌이었다면 <도리를 찾아서>는 훨씬 더 나의 입장으로 다가온다. 뭔가 안타깝고 애틋하다기 보다는 벅차고 기대된다. 그리고 이 여정에 감정을 더하는 부분은 도리의 부모님이 도리를 끝까지 기다렸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도리가 돌아올거라 굳게 믿고 찾아올 수 있게 조개로 길을 만들어 놓는다. 도리가 부모님과 재회하는 장면은 단순히 부모님을 만나서 뭉클하다기 보다는 그 수많은 조갯길 때문이다. 여러 방향으로 뻗은 조갯길이 집으로 향해 있는 그 장면을 딱 보면 정말 집으로 돌아왔구나하는 안도감과 도리를 끝까지 기다려주었다는 감사함과 뭉클함이 길의 가짓수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힌다. 나는 기대도 못했던 깊은 감정을 느꼈다. 도리를 위해 조갯길을 만들어 놓은 도리 부모님을 보고있노라면 길을 잃고 헤매거나 방황하는 자식이 결국 돌아올거라고 기다려주는 부모님들이 생각난다. 그 조갯길은 그런 부모님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괜찮아, 도리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두 번째 이유는 도리의 보모님이 도리를 대하는 방식때문이다. 도리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서 부모님이 다른 물고기인 척 숨바꼭질을 하자고 해도 모래에 정신이 팔려 모래를 만지작 댄다. 집을 찾아오는 것도 조갯길을 따라 오는 훈련을 해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도리의 부모님은 남몰래 눈물흘릴지언정 절대 도리를 재촉하는 법이 없다. 때론 조개를 써서, 때론 노래로 도리의 흥미를 돋우고 도리가 쉽게 익힐 수 있게끔 도와준다. 그런 도리가 조금이라도 무언갈 해내면 마치 세상을 다 갖다준 것 처럼 쉼없이 칭찬해준다. 도리가 미안하다고 하면 왜그러냐며 괜찮다는 말로 다독여준다. 내게 이 영화에서 제일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도리가 마침내 조갯길을 따라 집을 찾아내자 부모님이 도리를 칭찬해주는 장면이다.
네가 조개를 보고 집에 찾아왔다는 것의 의미는, 너는 이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거야!
이만큼 지금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말이 있을까 싶다. 단순히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너는 다 할 수 있다는 말이, 너는 이 일도 해냈으니 더 큰 일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그 말이 파도가 되서 나를 저만치 올려주었다. 이 세상에는 혼자 자신의 자리에서 굳센 물살에도 버티며 잘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데 제자리에 있다며,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렇게 제자리밖에 못 있으니 다른 건 잘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하고 있는 순간들이 내게도 많고, 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스스로의 기준이 너무 높은 탓도 있겠지만 세상의 기준이 너무 높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록 애니메이션이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이제 좀 자신감을 가지라고 위로해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날 뻔 했다.,
도리 부모님이 도리를 대하는 방식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어떨 땐 남에게도 너무 엄격하다. 도리의 부모님이 도리를 참고 기다려주듯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고 남을 참고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매 순간이 처음이고, 이 삶이 모두 처음인데 남이 잘하지 못하듯 나도 잘하지 못하는 것이고, 내가 잘하지 못하듯, 남이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시간이 갈수록 조금 더 익숙해질 뿐이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좀처럼 하기 힘든 것이 도리 부모님이 도리를 대하는 태도이다. 우리는 어떨 땐 '도리'이고 어떨 땐 도리와 '다른 물고기'가 되기도 한다. 항상 '다른 물고기'일 수만은 없다. 그런데 가끔 우린 내가 '도리'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게 남이 되었든, 내가 되었든 윽박지르고 재촉한다. 가끔은 도리의 부모님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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