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 영화/영화 리뷰

이것은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by 밍키쓰 2017. 1. 21.
반응형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2003년에 개봉했던 영화이자, 최근에 재개봉까지 했던 영화를 이제서야 보았다. 좋은 영화는 아껴보고 싶고 집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보는 걸 선호해 미루다 그렇게 되버렸다. 

 

 사진의 한 컷, 한 컷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극적이지도 않고 로맨틱하지도 않은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남자 주인공이 장애인을 사랑하는 이야기 아니라 남여의 사랑 이야기라는 뜻이다.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그들을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보통의 커플들 만큼 평범하고, 지극히 일상적이며 잔잔하게 흘러가면서 보통의 커플들 처럼 이별이 찾아온다. 막연히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리고 부끄럽게도 이런 종류의 사랑은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와장창 깨뜨린 결말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조제를 장애인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조제의 할머니이다. 조제의 할머니는 이런 손녀가 있다는 게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부끄럽다면서 집을 고치러 왔을 때에도 혼자 산다고 말하며 조제를 다락방에 숨기곤 한다. 산책을 시켜주면서도 남들이 보지 못하게 유모차에 태워 담요로 덮어놓는다. 조제에게 '너는 몸이 성치않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조제의 할머니이다. 


 조제도, 츠네오도, 그리고 종종 조제에게 말을 거는 이웃집 여자아이들도 조제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마치 망각한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따라서 츠네오의 사랑은 장애인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조제라는 한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고 그래서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영화인 것이다. 츠네오가 하는 사랑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은 여러 장면에서 보여준다.

 첫째, 츠네오는 우리가 흔히 일컫는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다. 츠네오는 지극히 평범한 그 나잇대 남자이다. 영화 초번에 숏컷을 한 여자와 자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스파게티를 우물대는 것, 예쁘장하게 생긴 카나에와 잠자리를 하고 싶어한 것, 마작 게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모두 츠네오가 그렇게 대단히 도덕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평범한 사림임을 강조한다.

 둘째, 츠네오는 진정한 사랑을 했다. 츠네오가 조제와 헤어지고 나오는 장면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나오는 츠네오의 독백은 츠네오가 진짜 사랑을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만약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츠네오는 조제와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츠네오는 '조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츠네오는 조제와 진정한 사랑을 했기 때문에 두번다시 조제와 친구로 지낼 수 없는 것이다. 


 조제는 스스로 장애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약자라는 프레임을 덮어쓰지도 않는다. 의자에서 다이빙하듯 바닥으로 쿵쿵 뛰어내리고 온갖 책들을 다 섭렵해 암기하고 있다. 같이 시설을 탈출을 한 친구에게는 '내가 너의 엄마가 되줄께'라며 강인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조제의 인식은 카나에와의 대면에서 극대화되어 보여진다. 카나에가 상처를 줄려고 외치는 '장애인 주제에 내 애인을 뺐다니'라는 말에 굴하지 않고 뺨을 맞자 똑같이 손을 들어 뺨을 때린다. 

 

 이처럼 츠네오의 그 나잇대 남자다운 평범한 모습과 조제의 모습은 이 영화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여느 커플들이 영원할 것 같다가도 헤어짐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들은 헤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무의미했던 것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조제와 츠네오가 했던 사랑은 조제에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가장 큰 변화는 조제가 세상과 대면했다는 점이다.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하면서 그동안 유모차 속에서 '꽃과 고양이'만 보고 책으로만 바라보았던 세상이 아니라 실제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가장 무서워하는 걸 보고 싶어"(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조제는 츠네오의 손을 꼭 붙잡은 채 호랑이를 본다. 호랑이는 조제에게 '보지 않아도 별 상관없었던' 존재이고 그건 바로 진짜 세상이다. 그러나 조제는 사랑하는 남자인 츠네오를 만나 꿈에 나올만큼 무섭더라도 호랑이와 마주한다. 보지 않아도 되었던 세상과 마주한 것이다. 조제의 진짜 이름은 '쿠미코'인데 조제라고 부르는 것은 조제가 좋아하는 사강의 소설의 나오는 주인공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제라는 이름이자, 영화 제목의 일부는 조제가 정의하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호랑이는 조제가 마주한 세상이다. 


"혼자 데굴데굴 굴러다닐 거야."(출처 : 네이버 영화)


 또 다른 변화는 '외로움' 에 대해서 알았다는 것이다. 츠네오와 조제가 들어간 물고기의 성이라는 곳에서 조제가 자신이 그동안 바람조차 없는 어두컴컴한 심해에 있었다고 하자 츠네오는 외로웠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제는 원래 그랬기 때문에 괜찮았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조제는 이미 츠네오를 통해 사랑을 알게 되었고, 세상을 마주했으며, 츠네오와 같이 있음으로 인해 '외로움'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상상 속의 물고기는 호랑이를 마주하기 전의, 외로움을 알기 전의 조제 자신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제목에 있는 물고기는 츠네오를 만나기 전의 조제인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통해 조제는 성장했다. 츠네오에게 너가 평생 업어주면 되지 않냐며 휠체어를 안사도 된다고 했던 조제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혼자 장을 보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담담하게 살아간다. 할머니가 밀어주는 유모차 속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았던 조제는 이제 자신이 운전하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삶을 살아간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엉망진창이었던 집안은 이제 마지막에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조제는 츠네오를 통해 비록 외로움에 대해 알았지만 스스로 성장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가 지극히 평범한 커플의 이야기라는 것은 조제에게는 처음이었던, 츠네오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러가는 여정에서도 드러난다. 대개 연애의 시작은 뜨겁고 영원할 것만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분해지기 마련이고 이별로 이어진다. 츠네오와 조제의 여행도 처음에는 일주일전부터 싸온 간식을 먹고 신나게 출발한다. 그러나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고 약간 다투기도 하고 심지어 터널의 불빛이 바뀌는 걸 신기해하는 조제를 츠네오는 귀찮아하기까지 한다. 결국 휴게소에서 조제가 화장실을 간 사이 동생에게 여자친구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말하며 동생의 자신없냐는 말에 대답하지 못한다. 사강의 시 제목 처럼 1년후 그리고 몇달 뒤에 그들은 헤어짐으로써 그들의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혹은 영원해야한다는 생각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좋은 영화는 특별한 극적인 장치가 없더라도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영화는 정말 정말 평범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극적인 갈등 없이도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조제와 츠네오가 성장해가는 과정에 있다. 조제가 가지고 있는 장애는 사실 장애가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단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이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에 불편함을 겪게 만드는 단점들이 있다. 우리는 조제가 그런 것처럼 우리의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도 그런 단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