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첫 '기억'은 무엇인가? 우리의 뇌속에는 내가 태어난 순간 부터 바로 이 순간까지의 모든 장면들이 저장되어 있다. 다만 우리는 떠올려내지 못할 뿐인데, 떠올릴 수 있는 첫 기억은 무엇인가? 내가 정확히 기억하는 나의 첫 기억은 5살 때 인가, 6살 때 인가 정확히 모르겠지만 유치원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 '바깥놀이'를 가는 장면이다.
△무표정한 폴(직접 캡쳐)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은 기억에 대한 영화이다. 2살 때 부모를 여읜 폴은 말을 잃은 채 두 이모와 함께 살아가는 피아니스트이다. 그의 피아노 실력은 비록 훌륭하지만 한번도 청년 독주자상을 탄 적이 없으며 그의 눈은 비록 아름답지만 감정을 담아내지 못한다. 항상 무표정한 눈으로 두 이모의 댄스 교실에서 피아노를 쳐댈 뿐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 들어섰다가 독특한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간직했던 소품들을 통해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하나 둘 찾아가면서 감정을 되찾게 된다.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한 줄 알았던 아버지는 알고보니 두 분이서 짠 공연을 연습하는 것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행복한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폴은 마지막 청년 독주회 콩쿨에서 마침내 연주에 감정을 담아내면서 우승을 차지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폴(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마담 프루스트는 폴이 마치 고장난 레코드 판처럼 그의 일상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고장난'상태이고 그에게는 충격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충격이 폴에게는 기억을 찾는 거였을 것이다. 기억을 찾기 전에 폴은 이상하게도 맹목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추억만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사진 중 어머니만 오려서 양면으로 붙여 모빌에 달아 놓고 아버지 사진은 다른 상자에 넣어놓기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세번째로 찾은 기억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는 듯하다. 신기한 것은 이 기억을 찾고난 뒤 처음으로 폴에게 감정이 찾아왔다는 점이다. 비록 그에게는 나쁜 기억이었지만 폴이 처음으로 감정 표현을 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나서 찾은 기억은 알고보니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 일부러 레슬링 장면을 위해 연습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랜드 피아노에 있는 악보를 잡아주는 흉상을 껴안을 만큼 행복해 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청년 독주회 콩쿠르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면 훌륭한 연주를 해낸다.
△마담 프루스트(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주제 의식이 강렬한 영화도 아니고 뭔가를 강력하게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잔잔하게 폴과 함께 기억을 되찾아 갈 뿐인데, 그 속에 있는 걸 억지로 들추어서 꺼내자면 '네 삶을 살아라.'정도 이다. 폴이 피아니스트가 된 것은 폴이 원해서가 아니라 이모들이 원해서 였고 그 때문에 폴은 감정없는 눈으로 말없이 아름다운 선율을 쳐댄다. 사실 이모들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는데 폴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고 고민 하던 중 마담 프루스트때문이라는 것을 듣고는 마담 프루스트에게 달려드는 장면이다. 그녀들이 내뱉는 대사들을 보면 '폴은 내거야!'. '폴을 우리에게서 뺏어 가려는 거지?' 라며 마담 프루스트를 할퀴어 대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미친년들인가 싶지만 가끔 나의 부모님이 보이던 모습과 비슷하다는 기시감을 느끼며 조금 섬뜩했다.
나의 부모님도 그랬지만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도 느꼈고, 가끔 듣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느끼지만 부모님들이 자식을 마치 자신들의 소유물인 것처럼 대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물론 기저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겠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자식을 내 손안의 인형처럼 여기기도 한다. 폴이 이모들이 시키는 대로 살았던 건 착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아무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기억을 되찾고 감정을 찾게 된 영화의 끝에서는 즐거운 표정으로 우쿨렐레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다.
폴이 마침내 눈빛에 감정을 되찾고 자기의 연주에 감정을 되찾고, 그리고 마침내 웃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종당에는 잃었던 말까지 되찾게 되는 데에는 그가 기억을 되찾은 사실이 매우 크게 작용 한다. 폴이 기억과 말과 감정을 잃은 것은 눈 앞에서 직접 목격한 부모님의 죽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걸 잊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그 속에는 그의 말과, 감정과, 행복한 기억과, 그리고 그의 인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제일 마지막에 찾았긴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해냄으로써 그가 잊고 있었던, 그리고 잃어 버렸던 것들을 되찾았다. 그만큼 인간에게 기억은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다.
영화는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을 준다. 색감 자체도 그렇지만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방식이 그렇다.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폴의 감정선을 차근차근 잘 따라갈 수 있게끔 천천히 진행되는데 신기하게도 영화의 끝까지 지루함을 느낄 여유도 없이 끝까지 집중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폴이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동화의 한 장면 과 같은 색감에 뮤지컬 같은 노래를 가미했는데 폴의 추억에 대한 환상을 같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유독 직선적 구도를 많이 쓰는데 감독 특유의 특징인 것 같았다.
비록 내게 많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 영화는 아니다. 감정이 휘몰아치는 영화가 있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감정이 정리되어 있는 걸 느낀 영화가 있는데 이게 바로 그런 영화다. 그런 점에서 내가 감정을 조금 휴식시키고 싶을 때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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