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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영화/영화 리뷰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나치전범VS문맹, 밸붕의 현장(스포일러 포함)

by 밍키쓰 2016.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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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당신이 법정에 섰는데 글자를 쓰면 당신이 나치전범이 아님을 인정해줄 것이고, 당신이 글자를 쓰는 것을 거부하면 당신이 나치전범이라는 판결받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라면 당연히 글자를 쓸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문맹이라면? 자신에게 문맹이라는 결점이 매우 수치스럽게 느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바로 한나가 이런 문제 앞에서 나치전범을 택했기 때문이다. 한나는 문맹이다. 마이클과 사랑을 나눈 뒤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이유도 그녀가 문맹이여서 책을 읽으려면 문맹이 아닌 사람이 책을 읽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한나에게 이 문맹이라는 것은 수치스러운 결함이었다. 왜냐하면 한나가 마이클을 갑자기 떠났던 이유도, 단순한 트램검표원에서 승진할 수 있었던 기회를 버리고 떠나야 했던 이유도, 법정에서 필체대조를 위해 전문가를 부르려고 하자 실제로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한 것도 모두 문맹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나치 친위대에 들어간 이유도 글자를 모르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문맹이라는 사실을 들키는 것은 그녀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안겨주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한 것이다. 


 이쯤 읽으면 조금 의아할 수도 있다. 나치 친위대에 들어가느니,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해 인정을 하느니, 승진 기회를 날리느니 차라리 문맹인 걸 들키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문말이다. 우리가 품는 의문들에 대해 한나는 직접적으로 대답하지만 않지만 그녀는 "오직 죽은 사람들만이 나에 대해 책임을 물을 자격이 있고 법정에 있는 판사던 방청객이던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라고 한다. 물론 이 말은 표면적으로 자기가 나치 친위대로써 지은 죄의 책임을 묻느냐 안묻느냐에 대한 말이다. 하지만 한나의 이 말 속에는 자신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죽은 사람들만이 자신의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문맹이라는 것을 들키는 것 대신에 다른 행동들을 취해왔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시켜서 보편적인 얘기를 하자면 개인의 수치심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클이 한나가 왜 글자를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고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했는지, 문맹이라는 사실을 자기가 밝힘으로서 한나의 죄가 덜어질 수는 없는지, 그렇게 해도 되는 지로 괴워할 때 마이클의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한다.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돼.....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라고 한다. 한나에게는 그녀가 문맹이라는 것을 숨김으로써 지키고 싶은 품위가 있고 숨길 자유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성숙하고 제대로 된 어른으로 존중한다면 상대방이 숨김으로써 지키고 싶은 품위와 자유에 대해 우리는 존중해줘야 한다. 개인의 수치심이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도와준답시고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된다. 내가 너에 대한 어떠어떠한 사실로 인해 너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해도 상대방은 수치심을 느낄 수 있고 우리가 그것을 우리가 괜찮다는 이유로 침해할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는 유독 오지랖이 넓다. 설만 되면 힘든 것이 단순히 귀성길/귀향길이 힘들다거나 일이 많기 때문 만은 아니다. 친척들은 서로의 안부만 묻는 것이 아니라 어디 좋은 회사에 취직했고, 너는 왜 아직 시집을 안갔니, 왜 그런 회사에 갔니 등의 필요 이상의 것들에 대해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입시가 끝나고서 입시 때보다 힘들었던 것은 말도 꺼내지 않는 나에게 굳이 어느 대학을 갔냐고 묻고, 그 대학은 어디가 어떻고 왈가 왈부 하는 것이엇다. 상대방이 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는 데에는 그 사람이 지키고 싶은 자기의 품위와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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