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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영화/영화 리뷰

<파수꾼>, 희준과 동윤은 기태의 파수꾼이었다.

by 밍키쓰 2016.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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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주>를 보고나서 내가 처음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알게 된 영화가 떠올랐다. 바로 <파수꾼>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가 감정소모가 너무 심해서 재탕하기 힘든 영화라고 한다. 이 영화는 인물사이의 갈등과 미묘한 감정 싸움이 있는데 이 감정을 시원하게 배출하는 장면이 없다. 그래서 관객들은 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과 갈등을 영화 끝까지 가져가게 되는데 그래서 다들 감정 소모가 심하다고 하는 것 같다. 



△2011년 개봉 파수꾼(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기태(이제훈 분)가 죽고 기태가 죽게 된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아버지(조성하 분)의 여정을 따라 가면서 왜 기태가 자살 했는 가를 보여주며 흘러 간다. 기태는 표면적으로 보면 무리 중의 우두머리이고 제일 강자이다. 그런 우월감에서 오는 행동은 아니지만 기태는 정말 우두머리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희준(박정민 분)은 그런 기태가 자기를 깔본다는 묘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어쩌면 그 기분은 동윤이(서준영 분)와 기태는 중학교 때 부터 친구이지만 자기는 고등학교에 와서야 친해졌기 때문에 그 관계가 다를 거라는 느낌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쨋든 희준은 기태가 자기한테 "많이 컸다."라고 한다거나 장난처럼 담배를 필 때 "망 봐."라고 한다거나 할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기분이 상했다고 팍팍 티를 내는 희준을 보고 기태는 아차 싶은 건지 사과를 하지만 희준이는 애매하게 사과를 받아줄 뿐이다. 결국 그러다 사건이 터지고 희준이는 전학을 가게 된다. 기태에겐 이제 동윤이밖에 남지 않았다. 어느날 기태는 동윤이에게 세정이를 진지하게 만나지 말라며 충고하고 그 말로 인해 동윤이와 기태의 사이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리고 뭐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기태에게 동윤이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어. 그냥 너만 없었으면 돼."


 그리고 집에 돌아온 기태는 자살한다.(나 같아도 제일 믿는 친구에게 저런 말 들으면 자살할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제일 약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태이다. 싸움도 제일 잘하고 항상 강하게 말하며 우두머리처럼 행동하지만 그 행동의 기저에는 관심을 향한 갈망이 깔려 있다. 기태가 관심을 향해 갈망하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어머니의 사진을 따로 액자처럼 만들어서 보관한 점, 그리고 자신의 사진이 가득한 앨범에 어머니만 나온 사진을 3,4장 끼워 놓았다는 점이 그렇다. 이런 관심을 향한 기태의 심리는 반복되는 기태의 대사에 있다.


"나 봐봐."


 재우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느꼈을 때, 희준이가 더이상 자기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리고 동윤조차 자기를 떠나갈 것 처럼 느꼈을 때 기태는 말한다. "나 봐봐."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에서 관심을 향한 기태의 갈망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낡고 헤진 야구공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를 말하면서 그는 처음 그 공을 받았을 때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다. 동윤이가 왜 그러냐고 하자 국민 타자가 되면 모든 사람이 자기를 보고 있지 않겠냐며, 상상해보라고. 기태가 자살을 택했던 이유는 단순히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를 '보고' 있는 친구 둘이 더 이상 자기를 보고 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태가 막말을 하고 강한 행동을 하고 결국엔 희준이를 때리고 나서 다시 먼저 다가간 이유는 희준이가 다시 자기를 바라보아 주길 원했기 때문이었고, 동윤이에게 세정이를 진지하게 만나지말라고 했던 이유도 동윤이가 자신이 아닌 세정이만을 바라볼 까봐 였다. 관심에 대한 잘못된 욕망이 결국 자신에 대한 관심을 돌리게 만들었고 세상의 마지막 두 시선이었던 동윤이와 희준이가 눈을 돌리자 기태는 살아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살한 것이었다. 희준과 동윤이 기태의 파수꾼이었다라고 한 것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동윤과 희준은 위태위태한 기태를 지켜주고 바라보고 있던 '파수꾼'이었다. 



 가끔 이걸 퀴어 영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느 점이 그런 건지 모르겠다.(사실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기태의 욕망은 동윤과 희준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관심에 대한 욕망일 뿐이다. 


 영화가 훌륭한 것은 남자 고등학생 사이에서 있을 만한 미묘한 위계질서, 행동, 그리고 언행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치들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까지 더해져서 영화를 읽어나가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윤성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기태라는 인물, 그리고 세 주인공의 관계는 제일 강한 것 같았지만 제일 약했다. 그 관계가 약한 이유 첫째는 기태라는 인물이 가진 관심에 대한 뒤틀린 갈망 때문이었고 둘째는 어쩌면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갈등을 해결 하는 데에 미숙한 모습을 세 명이 극명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늦은 기태의 '미안해'와 별 의미 없는 희준이의 '괜찮다고'는 결국 갈등을 끝으로 가져갔고 희준이를 전학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윤이의 '너만 없었으면 돼'는 기폭제가 되어버렸다. 기태가 조금 더 일찍 사과를 했더라면, 희준이가 괜찮지 않다는 것, 나는 기태와 동윤이에게 벽을 느낀다는 것을 말했더라면 그렇게 산산조각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기태가 동윤이에 잘못된 방식으로 관심을 갈구하지 않았더라면 기태가 자살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갈등을 거쳐오면서도 그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미숙하다. 특히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욱 그렇다. 먼저 사과했으면 되는데 조그만 자존심과 '괜찮겠지'라는 방심 때문에 우리는 너무 늦은 사과를 하고 의미없는 괜찮음을 말한다. 인간은 강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나도 약하지만 너도 약하고 그도 약하고 그녀도 약하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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