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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영화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5회와 함께 다시 보는 유영철 사건 일지 (1)

by 밍키쓰 2022. 1. 29.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5회에서 유영철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생겼죠. 2003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추격자> 영화 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모티브가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너무 끔찍했던 사건을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사건 개요


1. 유영철 살인사건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유영철이 연쇄적으로 21명을 살해한 사건을 말한다.

2. 주로 서울 지역에서 21명의 부유층 노인과 여성들을 망치나 칼 등 잔혹한 방법을 이용해 연쇄적으로 살인하였음.

3. 부유층에 대한 불만과 이호한 뒤에 느낀 여성에 대한 혐오증 때문이라고 밝혔긴 함. 근데 쓰레기한테 이유가 중요한가? 

 

 

유영철 사건 일지 - 첫 번째 사건


2003년 9월 24일 수요일, 이영애(30)씨는 아침 일찍부터 생신을 맞은 서울 시아버님에게 축하인사차 전화를 드렸으나 아무도 받지 않음. 의사인 남편과 지방에서 지내느라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것도 죄송스러운데 전화통화도 되지 않자 마음이 편치 않았던 상황.

 

일흔이 넘어도 젊은이 못지 않게 건강하셨고 평생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몸관리를 잘해오셔서 그저 전화선에 문제가 생겼거니하고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어디 가신다는 말도 없었는데 생신날 연락이 안된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영애씨는 남편에게 빨리 퇴근해서 올라가보자고 채근하고 서둘러 서울갈 준비를 했다.

 

밤10시가 되어서야 강남구 신사동 주택가 부모님댁에 도착한 영애씨 부부는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자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인기척이 없는 집안 공기는 싸늘했고 불까지 꺼져서 어두컴컴했다.

 

시부모님을 부르며 안방문을 여는데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불을 켜보니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엇따. 노부부는 머리가 깨어진 채 잠옷 바람을 엎어져 있었고 이불과 방바닥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던 것...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남 경찰서 형사들은 출입문이 잠겨 있고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으며 뒤진  흔적은 있으나 거액의 현금과 귀금속이 그대로 있는 걸 확인하고 면식범에 의한 원한 과계 혹은 가족 갈등에 의한 살인으로 간주하고 피해자 주변을 중심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경찰서 과학수사요원들의 현장 감식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시아버지 이진수(73세)씨는 머리에 둔기로 5차례 공격을 받고 두대골 골절 및 뇌손상을 심하게 입은 것이 사인이었고, 목과 팔에도 칼에 찔린 상처 및 골절상이 발견되어 방어와 저항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

 

시어머니 이숙진(67세)씨는 같은 둥기로 머리에만 3번의 공격을 받았는데 정수리 부근에 집중되었고 다른 부위에는 공격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 전혀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공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판단됐다.

 

사망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정오 사이로 추정되었고, 희미한 구두 뒷굽자국과 지문, 모발 몇 점 등의 증거도 일부 수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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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을 추정하다


2003년 10월 9일 목요일, 은퇴 후 소일거리로 심야주차관리원으로 일하는 고상수(61)씨는 새벽부터 일하고 저녁 56시 반 정도 북한산 자락으로 있는 집으로 귀가했다.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고, 집에 전화해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 여든이 넘은 노모와 장애인 아들을 돌보느라 집을 비우는 일이 없는 아내가 웬일인가 싶었던 그.

 

급한대로 담을 넘어 들어가 거실의 스탠드 불을 켰더니 아내가 벽난로 옆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고,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보았지만 이미 싸늘해진 시신이었다. 무의식적으로 112에 신고하고 어머니와 아들을 찾아 집안을 헤매다녀보니 아들은 2층 방문 앞에, 노모는 현관앞 화장실 입구에 숨져 있었다. 머리가 깨져 온 바닥이 핏물로 흥건했따.

 

서대문 경찰서 형사들이 조사한 결과 출입문이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도 없었으며 뒤진 흔적이 있지만 현금, 수표와 귀금속 등이 그대로 있다는 점에서 면식범에 의한 원한관계나 가족 갈등에 의한 살인으로 보고 피해자 주변 중심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경찰청 과학수사요원들의 현장 감식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겨로가 피해자들은 둔기로 얼굴과 머리에 여러차례 가격을 당했으며 두개골 골절과 뇌손상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에서 뚜려한 발자국이 채취되어 곧바로 신발 종류와 제조 회사를 확인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 검색작업에 들어갔다. 언론에서는 신사동 사건과 한데 묶어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이라고 부르기 사작했고 경찰서에는 서로 다른 개별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불필요한 공포가 확산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강남경찰서와 서대문 경찰서에 각기 차려진 수사 본부에서도 서로 다른 사건으로 보고 피해자 주변과 인근 지역 불량배, 강절도 전과자와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두 사건을 비교 분석한 서울 경찰청 범죄분석반은 범행시간과 수법, 흉기, 피해자의 나이, 피해 주택의 위치와 구조 등 동일한 부분이 많은 것을 지적하며 조심스럽게 동일범에 의한 연쇄범죄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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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빠져버린 사건


2003년 10월 16일 목요일, 지병치료를 위해 장인을 모시고 병원에 갔던 최용준씨가 오후 1시경 삼성동 처갓집에 돌아와 초인종을 눌렀지만 응답도 없고 소리쳐도 대답이 없었으며 전화도 받지 않았다.

 

마침 장인도 열쇠가 없어서 처남에게 전화하고 기다렸는데, 처남이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릿한 냄새가 훅 끼쳤다. 장모 유지혜여사가 화장실 바닥에 엎어져 피를 잔뜩 흘리며 의식을 잃은 채 신음하고 있었던 것..

 

119를 불러 인근 종합병원응급실로 옮겼으나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탓에 뇌손상이 심해 희망이 없는 상태였다. 위 두 사건과 유사하게 두부 및 안면부 다발성 손상이 원이이었다. 결국 유여사는 아무말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한편 112 신고를 접하고 현장에 출동한 강남 경찰서 형사들은 앞선 두 사건을 의식해 더욱 신중히 현장관찰을 시도했다. 역시나 출입문이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이 뚜렷하지 않았으며 뒤진 흔적은 있으나 현금과 귀금속은 그대로 있었다. 집 뒤쪽 담장 안과 밖에서 다량의 발자국을 발견했고 면식범이나 가족이 아닌 외부인의 침입이었던 흔적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

 

뒤이어 도착한 과학수사반의 현장 감식결과 같은 발자국이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서도 발견되었으며 구기동 사건 족적과 비교하니 일치하였다. 동일범임을 확신하는 순간.

 

서울 경찰청은 물론 경찰청 전체가 극도의 긴장 상태에 돌입했고, 사건과 수사내용에 대한 철저한 보안 유지가 하달됐다. 언론 보도는 연쇄살인임을 거의 기정사실화 하여 보도하기 시작했고, 경찰이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한 채 엉뚱하게 피해자 가족과 주변인물들을 수사 대상으로 삼아 괴롭힌다고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한 일선 경찰관이 "한 건만 더 발생하면 잡을 수 있다"며 또다른 희생자가 발생하길 바라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작은 소동이 일기도 했다. 3번째 사건으로 여론의 압박, 경찰의 검문 검색 및 수사망이 강화되면서 한동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수사에 진전도 그다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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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성동 사건 이후 한달이 지난 2003년 11월 18일 화요일 네 번째 사건이 발생한다. 주택가에 담과 마당이 있는 혜화동 양옥집으로 약사인 오혜란씨는 아침 9시 50분경 약국에 출근해서 일을 보다 12시 50분경 보일러 기사로 부터 AS 의뢰를 받고 왔는데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다는 항의성 전화를 받게 된다.

 

간병인 겸 파출부 아주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팔순의 시아버지 혼자 두고 낮잠을 자거나 손자를 업고 동네에 산책을 나간 것이라고 생각했고 워낙 착하고 성실해 늘 식구처럼 지냈던 아주머니가 그럴 일 없다고 이상하긴 했지만, 일이 바빠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오후 3시경 집에 잠깐 들른 오여사는 여전히 초인종에 답이 없는 아주머니에게 화가 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집안은 연기로 가득차 앞을 볼 수 없었다.

 

연기를 헤치고 시아버지 방문을 여니 바닥에 피만 흥건하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갓난아기인 손주가 있는 작은 방문은 잠겨서 열리지도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 위에는 시아버지가, 방바닥에는 간병인 아주머니가 불에 탄채 누워 있었다. 갓난아기였던 손주는 이불과 포대기에 겹겹이 싸인 채 아무 상처 없이 옆방 소파 위에 누워있었다.

 

처음에 현장을 관찰한 동대문 경찰서 형다들 중 일부는 사체에 불을 지르고 지하실에 있던 곡괭이와 골프채 등을 가져다 금고를 부수려고 한 흔적 등이 기존 신사동, 구기동, 삼성동 사건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짚어 이번 사건은 연쇄 살인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장을 감식한 현장요원들과 사체를 부검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들은 둔기에 의한 두부 및 안면부 다발성 손상과 두개골 함몰 및 뇌손상 등 공격 방법과 흉기가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거실과 복도에서 발견된 족적도 역시 신사동을 제외한 두 사건과 일치했다. 사멍 추정시간도 오전 10시 ~ 12시 이전 세 사건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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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집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은 인근 건물 입구에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녹화된 테이프를 제출 받아 분석에 들어갔다. 다행히 테이프에서 범행을 끝내고 집 옷장에 걸려있던 점퍼를 걸쳐입은 채 유유히 걸어내려가는 범인의 뒷모습이 찍힌 화면을 발견했다. 

 

이 영상을 통해 범인의 키가 163센치, 그리고 2,30대 후반의 남자라는 것을 추정했다. 족적 검색에서 찾은 K 제화의 B 캐주얼화를 신고다니는 사람을 찾는다는 수배 전단을 전국에 이때 배포한다.

 

공교롭게도 주택가 부유층 노인연쇄살인 사건 발생지역의 이름 두 글자가 모두 같은 자음으로 시작하다 보니 항간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ABC 살인>을 모방한 '가나다 사건'이라는 풍문이 떠돌기도 시작했다. 즉, 신사동= ㅅ의 연속, 구기동 = ㄱ의 연속, 삼성동 = ㅅ의 연속, 혜화동 = ㅎ의 연속. 이기 때문에 다음 사건 역시 같은 자음으로 구성된 명칭을 가진 동네에서 발생할 거라는 예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모방 사건의 발생


아니나다 다를까 혜화동 사건 이후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인 2004년 2월 11일 정오 무렵, 분당 '정자동'의 고급 아파트에서 팔순의 부유층 노인이 둔기로 머리를 여러차례 강타 당해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전 사건들과 다른 점이 많았다.

1) 주택가가 아닌 고층 아파트임

2) 사용된 둔기가 훨씬 작음

3) 발견된 발자국의 크기와 모양이 다름

4) 신용카드 등 금품이 사라짐. 

 

결국 이 사건은 사건 발생 한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인 3월 4일 범인이 잡힌다. 증권사 직원이 고객을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다 거절당하자 피해자를 사랳하고 신용카드 등을 훔쳐 달아난 '면식범에 의한 금품을 노린 살인'이었던 것.

 

그러다가 서울 주택가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식어가던 2004년 봄, 거울 서남부 지역에서 심야에 귀가하던 여성들이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괴한에게 칼로 마구 찔리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게 된다.

 

이때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 지금의 이춘재 사건을 영화한 <살인의 추억>이 화제가 되었던 때라 언론에서는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며 계속해서 자극적인 보도를 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3건 중 2건이 목요일에 발생했고 그 중 비오는 날이 있었다는 점을 과장하여 '비오는 목요일 밤의 괴담'이라고 기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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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남부 여성 연쇄 피살 사건의 시작 그리고 유영철을 잡을 뻔하다


1. 2004년 2월 26일 새벽 5시 신림동 : 방학이라 서울 할머니댁에 올라와 있던 여고생이 새벽에 일나가는 할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길에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칼로 10여차례 찔린 사건 발생. 다행히 목슴은 건졌지만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고 평생 후유증을 안고 가야하는 중상을 입었다.

 

2. 2004년 4월 22일 새벽 3시 고척동 : 친구집에 갔다가 귀가하던 여대생이 자시느이 집 현관에서 문에 열쇠를 꽂아둔 채 사망한 채로 발견됨. 칼로 가슴과 다리 등 6군데를 찔렸다.

 

3. 2004년 5월 9일 새벽 2시 대방동 보라매 공원 :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던 여대생이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칼로 10여차례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되었음.

 

일부에서는 이 사건들을 두고 노인 연쇄 피살 사건과의 연관성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범행시간, 장소, 대상, 방법, 흉기 등이 전혀 달라 동일범의 소행으로 볼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두 종류의 연쇄 살인이 한꺼번에 발생했고 범인은 오리무중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민심은 심리적 공황 일보직전까지 와 있었다.

 

혜화동 사건이 발생하고 두달 뒤인 2004년 1월 20일 아침 7시 반, 신촌의 한 찜질방에서 큰 소동이 생긴다. 수면실에서 잠자던 손님의 옷장 열쇠가 없어져 확인해 보니 누군가 열쇠를 훔쳐 지갑에 있던 현금과 상품권 등 1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간 것. 몇 시간 전인 새벽 4시에도 비슷한 도난 사건이 발생했던 터라 종업원이 탈의실을 예의 주시하고 있어서 다행히 옷장을 열고 돈을 꺼내간 손님의 얼굴을 기억했다.

 

꽤 중요한 시점이다. 경찰이 출동했고 용의자를 붙잡았는데 이름은 유영철이며 절도 등 전과범이었다. 

 

이 용의자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면서 피해자에겐 "20만원을 줄테니 없었던 일로 하자" 고 합의를 종용했고, 연행하던 경찰관에게는 화장실에 가자고 하곤 피해자와 합의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피해자는 합의해주지 않았고, 경찰은 용의자 유영철에게 수박을 채워 경찰 지구대로 연행했고, 유영철은 목격자 진술을 듣느라 잠심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수감을 풀고 도주해버렸다.

 

경찰에 쫓기던 유영철은 3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도주하다 다시 붙잡혔다. 하지만 범행을 극구 부인했고 찜질방 종업원 진술 외 증거가 없다는 점, 도난 당한 금액이 10만원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유영철은 자유의 몸이 된다. 이땐 몰랐겠지만, 소액 절도 혐의에서 극구 도주하는 범인의 이상행동에 주목하지 않은 경찰과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조인들의 성의없는 판단이 초래할 이후의 엄청난 비극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범죄 수사 역사에서 '천추의 한'으로 남을 만한 순간이었다.

 

비극의 시작


2004년 2월 6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울 외국어대 인근 이문동의 한 골믹길에서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하던 의류상가 직원 전효실씨는 누군가와 마주쳤고 가슴과 팔 등 5군데를 칼에 찔려 몸부림치다 가까이 있던 중국집 문을 밀고 쓰러졌다. 한창 배달 준비를 하던 중국집 주인은 괜찮냐며 말을 시켰지만 신음소리만 흘렸고, 112 신고후 5분만에 경찰이 도착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피해자는 사망하고 만다.

 

경찰은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금품을 가져가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치정이나 원한 관계에 의한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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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4일 새벽 1시 50분경, 인천월미도 바닷가 가까이 있는 석유가게 주차장에 있던 승합차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차로가 소방관들은 인근 석유 저장고로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며 겨우 불길을 잡았고 진화에 성공했는데, 불이 꺼진 차 안에 시체 1구를 발견한다.

 

시체는 양손목이 절단되어 없는 상태였고 온몸에 20여 군데 칼에 찔린 상처가 발견됐다. 국과수의 부검 결과 머리에서 커다란 둔기로 얻어맞은 상처도 발견된다.

 

나중에 밝혀진 피해자 신원은 서울 황학동 도깨비 시장 노점에서 불법 CD나 비아그라 등을 판매하는 남자로 채권 채무나 원한관꼐등 살해될만한 주변 문제를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살해되던 날 저녁 7시 경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뒷골목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이 종업원에게 목격되었다. 

 

당시 연초부터 부천에서 초등학생 2명이 실종된 뒤 사체로 발견되고 포천에서도 실종된 여중생이 피살된 채 발견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실종 신고 접수 후 경찰의 조치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던 시점이었다.

 

이에 경찰청에서는 2월 17일부터 실종사 수사에 전념하는 '100일 작전'을 게시하겠다고 발표, 100일작전이 한창이던 3월 24일, 서울의 한 경찰서에 출장 마사지사로 일하던 20대 여성의 실종신고가 접수된다. 

 

밤에 손님 전화를 받고 나간 이후 소식이 없어 걱정하던 동료가 신고한 것이었다. 실종자 수사에 저념하는 100일 작전 중이었지만 유흥 관련업에 종사하는 20대 여성들은 종종 연락없이 영업 장소를 옮기기도 하고 일을 그만두고 새 삶을 찾기 위해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고 판단한 경찰은 '일단 기다려보자'며 신고자를 돌려보냈다.

 

6월 4일과 28일에도 비슷한 실종신고가 접수됐으나, 유사한 이유로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넘어갔다.

 

이 3건의 실종신고 중 단 한 거이라도 제대로 수사가 진행됐다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피해자를 단 몇명만이라도 줄일 수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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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에 착수하다


2004년 7월 12일 밤 11시경, 서울 관악구에 사무실을 둔 출장 마사지 업체에 30대 남자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자 표시 장치에 남겨진 번호는 휴대전화였고 신촌 로터리에서 만나자는 호출이었다.

 

이 전화를 받고 나간 임희선씨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업소로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나 지금 납치되고 있어요"라고 한마디를 남기게 된다. 전화를 받았던 동료가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휴대폰이 꺼져있었고 이후 희선씨는 연락도 두절되고 업소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비록 출장마사지업에 종사했어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고향 가족에게 꼬박꼬박 돈을 보내는 보람으로 살아가던 희선씨여서 장난이나 허위 전화는 아니라는 것이 업소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결국 이틀이 지난 7월 14일, 업주 노씨는 과거 사건 관계로 만났던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양형사에게 전화했다. 양형사는 전화로 들은 내용을 첩보로 작성해서 보고하고는 수사에 착수한다.

 

 

유영철을 잡게 되다.


이틀날 7월 15일 새벽 2시, 희선씨를 호출했던 전화번호가 다시 전화기 화면에 뜬다. 신촌 G편의점 앞으로 마사지사를 보내라 달라고 했고 목소리는 동일했다. 신촌 현장에서 잠복 근무 중이던 양형사에게 연락하고 나서 마사지사가 출발했고, 마시지 업소 주인과 친구들은 눈에 띄지 않도록 마사지사를 따라갔다. 마사지사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자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남자는 모습을 감춘 채 마사지사가 맘에 들지 않으니 교체해 달라고 전화한다.

 

다시 교체된 마사지사가 약속장소에 갔지만 남자는 만날 장소를 인근 H 대학교 앞, G 마트 뒷편, G 마트 앞쪽 등으로 계속 바꾸어 댄다. 할 수 없이 양형사 팀은 각 장소에 나누어 잠복하기로 한다. 

 

새벽 4시 45분경 인적없는 G 마트 뒤 골목에서 웬 남자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게 목격되고 곧이어 업소의 노씨에게 연락이 왔다. 방금 전 남자가 다시 G마트 뒤편으로 마사지사를 보내달라고 전화했다는 것. 

'저놈이다' 싶었던 노씨는 섣불리 덮치지 않고 양형사에게 전화했다. 양형사는 바로 출발하면서 인근 순찰 지구대에 연락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일러둔다.

 

 새벽 5시 연락을 받은 순찰 지구대 김경장이 출동했지만 남자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차 싶었으나 20분 뒤 남자는 G마트 앞 길가에 다시 나타났고 김경강과 노씨 일행이 포위하여 덮쳤다. 때마침 양형사 일행도 도착하여 수갑을 채우고 차에 태우게 된다.

 

체포된 남자의 이름은 유영철. 절도 등 전과 11범이었고 지난 1월 신촌의 한 찜질방에서 발생한 소액절도 사건의 피의자로 불구송 상태에서 수사중인 피의자였다. 전화로 불러낸 마사지사를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유영철은 이상한 대답을 한다.

 

"마사지사가 맘에 안들어 바꿔달라고 하고 기다리는데 다짜고짜 덤벼들어 붙잡았기 때문에 마사지사는 잘 모르고요. 요새 발생한 서남부 살인 사건 그거 다 제가 했어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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